애들
머릿 속에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를 때,
그걸 분출하지 않고 그냥 놔두면,
한 없이 머릿 속에서 부유하는 것 같다.
분출되지 않고 돌아다니는 생각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머리나 마음이 쉴 틈이 없어지는 것 같다.
따라서 분출을 좀 해야될 것 같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사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 한테도 얘기하기 적절하지 않은 주제도 있고,
내 주변의 누구한테 얘기해도 별 공감을 얻지 못할 주제도 있고,
그렇다.
그 중 하나는, 애들 얘기다.
최근 들어서 더욱 문득문득 드는 생각은,
애들한테 잘 해주는게 제일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내가 말하는) 애들이라 함은 글쎄 어디까지가 애들일까.
아마 뭐 적어도 초등학생들 정도까지는 확실히 애들인 것 같다.
중학교 어디 쯤인가에서, 애들에서 청소년으로 넘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애들이고 어른이고를 떠나서,
누군가가 세상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하고 있으면,
일단 도와주고 싶고, 힘이 되어주고 싶고,
그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왜 그런 생각이 들까? 측은지심 혹은 불인인지심 같은 것이 있어서일까?
그런데 지금 말하려는 것은, 어른보다는 애들에게,
그런 어려운 상황이 덜 생겼으면 한다는 것이다.
내 주장(?)의 요지와 근거는 다음과 같다.
요컨대, 애들한테 잘해주는 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 것,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더 따뜻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절실하며 효율적인 방법인 것 같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살펴보려면,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개념을 돌아봐야한다.
난 언젠가부터, '세상'이라는 것은 한 가지의 성질로서 존재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그 하나의 세상 안에서 살아가며
누구는 세상을 좋게 느끼고 누구는 어렵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것은 사람들 각자 생각하고 느끼는 그 모습대로의 세상 그 뿐이라고 생각했다.
즉 각각의 사람이 각각의 세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특히, 현재에는 전 세계 인구만큼의 서로 다른 세상이 있겠다.
나의 세상과, 너의 세상은, 실제로 다른 것이라는게 내 주장이다.
나는 내 세상에서 살고, 너는 니 세상에서 산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의 세상과 너의 세상이 겹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 겹치는 부분조차 사실은 내 세상의 일부로서와 니 세상의 일부로서 서로 다른 것이다.
글쎄, 수학적인 팩트에 대한 주장이라기보다는,
그게 내가 제안하는 '세상'이라는 단어 및 개념의 정의(?)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 같다.
누군가의 세상은 따뜻하고 서로를 위해준다.
이 사람의 세상에서는, 다른 어떤 사람 A가 B를 도와주는 것에는,
그저 측은지심이나 불인인지심 외에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사람들은 서로 돕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의 세상은 계산적이고 교활하다.
이 사람의 세상에서는, 위에서 말한 똑같은 사람인 A와 B를 쳐다볼 때에,
A가 B를 도와주는 이유는 뭔가 계산적인 이유가 있다.
뭔가를 원하니까 등등.
그럼, 정답은 무엇인가? 실제로, A는 B를 왜 도와줬는가?
실제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아마도, 아 그건 A 자신만이 알고 있겠지, 할 수도 있겠다.
예컨대, A에게 물어보거나 잡아다가 취조하면,
실제 B를 도와줄 때에 무슨 생각으로 도와줬는지 알아내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는,
A라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했냐 보다도,
A라는 사람의 행동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세상관, 세계관에 훨씬 크게, 혹은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생각한다.
즉, 위에서 말한 첫 번째 관찰자에게는, 그의 세상에서는,
A는 그냥 좋은 마음으로 B를 도와준 것이고,
두 번째 관찰자에게는, 그의 세상에서는
A는 계산을 하면서 B를 도와준 것이다.
그러니까, 실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는,
그 일을 관찰하고 판단하는 주체의 숫자 만큼이나 수많은 정답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더럽고 부조리하고 치사한 세상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내가 끼고 있는 안경의 색깔만 받아들이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하간에, 집합적으로 뭉뚱그려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은,
사람들 각자가 가진 그 세상들이 서로 어떤 식으로 버무려지고 합쳐져 중첩된 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 각자가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바라본다면, 각자의 세상이 아름답고 따뜻하다면,
집합적으로 일컫는 '세상'도 평균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각 사람은 어린 시절에 가장 크게,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더 과격하게는 자신의 세상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자기와 주변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세상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를 자신의 세상으로서 구축한다고 본다.
그것은 태어나서 길면 십여년 안에 거의 다 만들어지고 평생을 별로 바뀌지 않고 간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릴 때에 자신을 전적으로 서포트해주는 따뜻한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었던 사람의 세상과,
그런 어른이 하나도 없고 착취만 당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의 세상은,
분명 큰 차이가 있지 않을까?
누군가가 어릴 때에, 그 아이에게 그런 따뜻함을 줄 수 있는 어른,
내가 바로 그런 어른이 되어줄 수 있다면,
가능한 많이 그렇게 해 주고 싶다.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그 아이의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 아이는 앞으로의 삶에서도 따뜻한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잘 해주는 것, 따뜻하게 해 주는 것,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그래서 세상을 따뜻하게 바꾸는 좋은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